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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바탕 심리학

왜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

by madehera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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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심리의 역설, 스토클홀름 증후군 이야기

혹시 뉴스를 보시다가 “저건 진짜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인질로 잡힌 사람이 오히려 납치범을 감싸거나, 더 나아가 사랑까지 느꼈다는 이야기. 그런 일은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이상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생존을 위해 작동한 결과였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스토클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1973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한 남성이 은행에 침입해 총을 들고 네 명의 직원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무려 6일 동안 대치했죠.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던 가운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질 중 한 여성이 범인을 감싸고 “그는 우리를 보호해줬어요”라고 말한 겁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인질이 사건 이후 범인을 면회하고, 재판에서도 그를 두둔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납치당한 사람이 범인을 감싸는 기묘한 심리

납치나 감금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 극도로 활성화됩니다. 인질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죠. 그런데 그 생사의 열쇠를 쥔 사람이 바로 범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심리적으로 유일한 생존의 열쇠가 범인에게 있을 때, 뇌는 이 사람을 ‘적’으로 인식하는 대신 ‘내 편’으로 전환시키려는 전략을 쓰게 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 해소라고 설명합니다.

‘이 사람은 나를 위협하는 존재야’라는 생각과 ‘이 사람이 나를 살릴 수도 있어’라는 기대가 충돌할 때, 뇌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 생각을 바꿉니다.

“그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적어도 나를 때리진 않았어.”

“나한테는 잘해줬잖아.”

이런 식의 합리화는 뇌가 불안과 공포를 버텨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생존을 위해 심리적으로 자신을 조정하는 거죠.

뇌과학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최근 뇌과학에서는 스토클홀름 증후군과 같은 심리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합니다. 공포를 감지하는 편도체와 판단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사이의 연결이 위협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뇌는 ‘공포’를 ‘애착’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건 보통 사랑이나 애착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이 옥시토신이 범인에게 향하면 어떻게 될까요? ‘살려준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끌리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납치뿐 아니라 일상에도 있는 스토클홀름 증후군

스토클홀름 증후군은 납치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심리는 아닙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인 배우자를 끝까지 감싸거나,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직원이 오히려 상사의 인정을 갈망하는 경우, 혹은 자녀가 학대받은 부모를 변호하는 모습에서도 유사한 심리가 작동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착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준 사람’이 동시에 ‘정서적 생존의 열쇠’라고 믿게 된 상태에 가까워요. 이게 바로 스토클홀름 증후군의 일상 버전이라고 볼 수 있죠.

대표적인 사례: 패티 허스트 사건

1974년 미국에선 더욱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신문 재벌가의 손녀인 ‘패티 허스트’가 급진 좌파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는데, 몇 달 후 그녀는 그 단체의 일원처럼 활동하게 됐고, 심지어 무장강도에까지 가담했습니다. 체포 후 법정에서 “나는 자발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이후 이 사건은 스토클홀름 증후군의 대표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도 충격에 빠졌지만, 심리학자들은 그녀가 겪은 감정이 놀라운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반응’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건 약한 마음이 아니라, 생존의 본능입니다

“난 절대 저렇지 않을 거야”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심리학은 언제나 조용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 상황에 놓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스토클홀름 증후군은 비정상이 아니라, 사실은 뇌가 너무나 정상적으로 작동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을 뿐이죠. 이 심리는 우리가 얼마나 환경에 따라 감정과 사고를 다르게 느끼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상처를 준 사람을 여전히 감싸고 있다면,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그 복잡한 심리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마무리하며

“왜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왜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감정을 바꾸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스토클홀름 증후군은 이상하거나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죠.

다음에 누군가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안에 숨어 있는 ‘감정적 생존 전략’을 떠올려 보세요. 누군가의 복잡한 감정은,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뇌가 택한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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