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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바탕 심리학

치킨값이 싸서 결혼을 결심했다?

by madehera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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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계산이 필요할까 – 심리적 비용과 손익계산적 관계 이야기

몇 년 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발표한 인터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에 30대 남성 회원이 한 말 때문이었죠.

“글쎄요, 같이 있을 때 치킨을 시켜도 반 마리씩 먹으니까 비용도 덜 들고요. 데이트할 때도 서로 허세 없이 지내니까… 그냥, 결혼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말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누군가는 “현실적이다, 요즘은 저런 게 오히려 신뢰 가는 기준이지”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치킨값으로 결혼 결심하는 건 좀 그렇다…”며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지 않으셨나요? '진짜 요즘은, 사랑도 좀 계산하게 되는 시대 아닌가?'

단순히 돈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나 일상적으로 ‘편안하고 효율적인 관계’를 선호하게 되는 시대.

우리가 점점 그렇게 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심리적 비용(psychological cost)과 손익계산적 관계(social exchange theory)라는 심리학 개념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사랑에도 ‘계산’이 있다?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흔히 감정, 로맨스, 설렘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의외로 오래전부터 사랑이나 인간관계를 ‘교환’의 구조로 설명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인데요, 이 이론은 아주 간단한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보상을 얻고자 한다.” 쉽게 말해, 관계 안에서 우리가 들이는 시간, 에너지, 감정, 돈 같은 '투자'에 비해 얻는 만족감, 안정감, 즐거움, 인정 같은 '보상'이 크면 그 관계를 지속하고, 반대라면 결국 그 관계에서 멀어진다는 거죠.

치킨값이 왜 중요한가요?

인터뷰 속 남성이 언급한 "치킨값이 덜 들었다"는 말은 단순한 식비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 말 속에는 꽤 깊은 감정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같이 있어도 편했고, 과한 기대 없이 진심으로 지냈다.”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았다.” “뭔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다.” 이런 감정은 심리적 비용이 낮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아시잖아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계속 눈치 봐야 하고, 기준에 맞추느라 스트레스 받으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지치게 된다는 거요.

그런데 이 남성은 치킨값이라는 재치 있는 비유로, 정서적 피로감이 적고, 자연스러운 관계였다는 걸 표현한 겁니다.

심리적 비용, 그건 마음속에서 새는 에너지예요

심리적 비용(psychological cost)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돈이나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우리가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지불하는’ 수많은 것들이 다 포함됩니다.

●상대에게 내 감정을 계속 설명해야 할 때

● 불편한 상황에서도 예의상 참아야 할 때

● 공감받지 못하고 혼자만 노력한다고 느낄 때

●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길 바라는 눈치게임이 반복될 때

이런 상황은 모두 우리에게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어요. 그게 바로 심리적 비용입니다. 그리고 이 비용이 쌓이기 시작하면, 관계는 점점 무겁고 피곤해집니다. 아무리 사랑이 커도, 감정이 닳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거죠.

관계는 결국 ‘감정의 손익계산서’

심리학자 존 새슬러와 해럴드 켈리는 관계 유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관계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저울질하며, 그 만족도를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이건 의식적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심리적 균형 계산이에요.

● 지금 이 관계에서 나는 만족하고 있나?

● 이보다 나은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 이 사람과의 시간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가?

이런 질문들이 쌓이고, 그 결과로 우리는 ‘계속 함께할지’를 판단합니다. 이걸 단순히 '계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어요. 자기 감정의 균형을 지키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니까요.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예요

요즘은 사랑이 예전처럼 열정 하나로만 지속되기 힘든 시대예요. 생활도 바쁘고, 감정도 예민하고, 관계에 쏟을 여유가 줄어든 시대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이렇게 말합니다.

"설레는 것보다 편한 게 좋다."

"오래 가려면 결국 성격보다 안정감이 중요하다."

"같이 있어도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제일 좋다."

이 말들이 의미하는 건 단순해요. 감정적으로 너무 소모되지 않는 관계가 오래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치킨값’이라는 말로 표현한 남성은, 현실적인 기준에서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본 셈이죠.

마무리하며 – 진짜 좋은 관계는 '가벼운 듯 깊은 관계'

"치킨값이 싸서 결혼했다"는 말, 누군가에겐 웃긴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속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관계에서 진짜로 원하는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은 물론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그 감정이 오래가려면 안정과 균형, 감정의 여유 같은 것들이 함께해야 하니까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얼마나 설레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편안하냐’는 더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요.

진짜 좋은 관계는,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사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그리고 함께 치킨 한 마리를 나눠 먹으면서도 계산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는 그런 관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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