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외면한 뇌, 그리고 애착의 비극
얼마 전,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만든 뉴스가 있었습니다. 일본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무려 20년 동안 사망한 채 방 안에 있던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었죠. 시신은 거의 미라처럼 굳어 있었고, 주변은 마치 그가 여전히 살고 있는 듯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건, 그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전혀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녀는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애는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예요. 그냥 조용히 지내고 있었어요.” 믿기지 않죠. 시신이 방 안에 있는데도, 매일같이 생활하며 함께 지냈던 그 어머니는 20년 동안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현실 회피라고 말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너무 슬픈 이야기예요.
오늘은 이 실화를 통해 상실 회피(Avoidance of Grief)와 애착 장애(Attachment Disorder)라는 심리학 개념을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엄마” – 실화 속의 심리학 일본 언론은 이 사건을 두고
‘은둔형 외톨이 가족의 비극’이라 보도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시신이 침대에 누운 채 이불과 옷가지로 덮여 있었고, 방 안엔 식재료가 채워진 냉장고와 깨끗한 생활용품들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곳은 마치 누군가 지금도 살고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고요. 심지어 아들의 이름으로 된 연금이 20년간 계속 지급되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돈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의도적인 범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건 ‘연금을 받기 위한 고의 은폐’가 아니라,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심리 방어 기제라는 거였죠.
상실 회피: “죽었다는 걸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 고통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퍼하고, 울고, 시간이 지나며 점차 수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회복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 상실을 그대로 부정한 채 멈춰버리기도 해요. 이런 상태를 상실 회피(Grief Avoidance)라고 부릅니다. 고통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마음은 그 감정을 ‘없었던 것처럼’ 외면해버립니다. 그게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심리학자 쿠블러 로스가 말한 ‘애도 5단계 모델’이 있죠.
●부정 (Denial)
● 분노 (Anger)
● 타협 (Bargaining)
● 우울 (Depression)
● 수용 (Acceptance)
이 중 첫 단계인 ‘부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 오래 머물러버리면,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 자체가 무뎌지게 되죠.
"죽은 게 아니야. 지금도 저기 방 안에 있는 거야." 이런 식의 인식 왜곡은 때로 아주 오래 지속되며, 사람을 ‘자기만의 현실’ 속에 가두어버립니다.
왜 어떤 사람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까?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이 내 삶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이 아니라, 내 정체성의 일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특히 자녀와의 애착이 아주 강했던 부모는 아이의 부재를 감정적으로 버티기 어려워합니다. 이건 단순히 사랑이 깊었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과잉 몰입된 애착은 때로 자녀를 ‘자신의 연장선’처럼 느끼게 만들죠.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저 아이 때문이다.” “저 아이 없인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식의 감정은, 자녀의 죽음을 곧 자신의 존재 붕괴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죽음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현실을 외면하고라도 살아남으려 하는 겁니다.
애착이 왜곡되면, 사랑은 통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 어머니는 생전에 아들을 외부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상태로 지냈습니다.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직장도 없었으며, 친구나 사회적 관계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어요. 아들의 삶 전체가 어머니의 세계 안에만 존재했던 거죠. 이건 건강한 애착이라기보단, 통제와 몰입이 혼재된 왜곡된 애착 관계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불안정 애착’ 중에서도 ‘회피형 또는 얽힘형 애착’으로 분류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거나, 감정적으로 얽매는 방식으로 애착을 형성할 경우, 양쪽 모두 감정적 독립이 어려워집니다.
이런 관계에선 상실은 단절이 아니라 붕괴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뇌는 감정을 막기도 한다 – 해리, 왜곡, 생존 본능
“어떻게 사람이 죽은 아들과 20년을 함께 지낼 수 있죠?” 많은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뇌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극단적인 슬픔을 피하려는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뇌는 너무 큰 고통이 닥치면,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해리(Dissociation)’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건 현실과 감정을 분리시키는 일종의 생존 기제예요.
한쪽에서는 그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그걸 부정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이중적인 인식이 계속되면 결국 현실 판단 자체가 왜곡되고,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현실’을 실제처럼 믿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어머니도, 그게 아니었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상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줘.”
하지만 상실의 슬픔은 ‘시간’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직면하고, 표현하고, 흘려보내는 애도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걸 하지 않으면 감정은 마음속에 눌러앉아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죠.
우울, 불안, 분노, 회피, 심하면 신체 증상까지.
이 감정들은 '슬픔이 눌려서 나오는 방식'일 수도 있어요. 그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더 일찍 받아들였더라면, 그 감정을 누구와 함께 나눴더라면, 그는 미라가 아니라 기억 속 따뜻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마무리하며 – 놓아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 사람의 부재만큼이나 자신의 존재를 다시 구성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럽고, 어떤 이들에겐 ‘세상에서 제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슬픔을 마주하고, 울고, 떠나보내는 건 그 사람을 더 깊이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놓아주는 것도, 그 사람을 위한 마지막 배려이자, 자신을 위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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