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고생이 지하철에서 뛰어내린 진짜 이유

“그냥 외로웠던 거예요” – 왕따와 사회적 소속 욕구의 심리학

한동안 뉴스에 조용히 올라왔다가 조용히 사라졌던 사건, 기억나시나요?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여고생이 선로에 뛰어내렸고, 다행히 기관사의 급정지 덕분에 생명은 건졌다는 이야기요.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무슨 충동이었을까”, “가정 문제일까”, “시험 때문인가?” 이런 다양한 추측을 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건 의외로 담담하고 조용한 진술이었습니다.

“그냥... 너무 외로웠어요.”

“학교에서 아무도 저한테 말을 안 걸어요. 급식 시간도, 체육 시간도, 그냥 혼자 있어요.”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가슴을 찌르던지요.

아무도 때리지 않았고, 욕하지도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이 아이는 너무도 조용하게 말해주고 있었던 거예요.

때리지 않아도, 존재를 지울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왕따’라고 하면 집단 괴롭힘, 폭력, 험담 같은 걸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 가장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눈도 안 마주치고, 단톡방에서 이름도 안 부르고, 다른 아이들끼리 웃고 떠들 때 혼자 이어폰만 끼고 앉아 있는 학생 한 명.

딱히 괴롭히진 않았으니까 “왕따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적으로는 그게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소속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존재거든요.

이걸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소속 욕구(Need to Belong)**라고 부릅니다.

‘혼자 있는 거 좋아해요’는 진짜일까?

요즘은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게 ‘선택’일 때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데 연결되지 않을 때예요. 이건 뇌한테도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줘요.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고립된 상태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은 신체적 고통과 비슷한 뇌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외로움이 그냥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아픈 감정이라는 거죠. 그 여고생도 “사람들이 말을 안 건다”는 사실 때문에 점점 자신의 존재가 '쓸모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아무도 모를 거 같아요." 이 말은 정말 무섭고도 슬픈 말입니다.

왕따의 핵심은 ‘침묵’이에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고 합니다. 이건 단순히 관계에서 소외된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심리예요.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기탓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내가 눈치 없어서 말 안 거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결국은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이게 바로 사회적 소속 욕구 붕괴예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가 무너지면, 삶에 대한 애착도 같이 약해지거든요.

그 아이는 ‘관심’을 원한 게 아니라, ‘존재 확인’을 원했던 거예요

선로에 뛰어내렸던 그날, 그 여고생은 다행히 살아났고 상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상담 초반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누가 절 혼내주길 바랐어요. 누구라도 저한테 뭐라도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이 너무 뭉클하지 않나요? 그녀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단지, 누군가 자신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거였죠.

외로움은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종 외로운 사람을 보면 “성격이 내성적이니까 그래”, 혹은 “요즘 애들은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곤 해요.

하지만 외로움은 단순히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연결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왕따는 단지 친구 없는 상태가 아니라, 소속감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이건 감정적으로는 거의 생존 위협에 가까운 공포감을 주는 일이에요.

마무리하며 – “그냥 한 마디만 건네도…”

혹시 주변에 조용한 친구가 있나요? 같이 있는 자리인데도 말 한마디 못 꺼내는 아이요.

“성격이 원래 그래”라고 넘기기 전에, 그 친구에게 가볍게 “오늘 점심 먹었어?” 그 한 마디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왕따를 만드는 건 ‘괴롭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다수의 침묵일지도 모릅니다.

그날, 여고생은 자신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눈맞춤, 그런 아주 작은 연결이 그녀의 마음을 붙잡아줄 수도 있었겠죠.